책 소개
“생명 있는 심장은 무엇을 향해 뛰는가”
광막한 삶의 끝, 치열한 생활의 현장에서 써내려간 시편들
뜨겁게 그리고 자유롭게 퍼져가는 한 인생의 울림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시력(詩歷) 50년을 맞는 강상기 시인이 전 생애를 걸고 써내려간 76편의 시를 담은 『오월 아지랑이를 보다』를 묶어냈다. 삶의 빛나는 순간을 잡아낸 초기 시편부터 ‘오송회 사건’이라는 국가폭력으로 무너진 삶을 부여잡고 끈질기게 써내려간 시편들, 그리고 기나긴 암투병 와중에 깨달은 초탈에의 의지를 담은 신작시까지 시대와 개인의 삶이 오롯이 녹아든 특유의 시상을 이번 시집에 새겨놓았다.
총 3부로 나누어 묶은 이번 시집에는 “한 남자, 한 사람, 아버지의 생애”(「해설」, 김현)가 깊이 투영되어 있다. 시대의 아픔에 공명하면서도 한 인간으로서의 내면 세계에도 천착하며 나와 우리의 영혼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강상기 시인의 시 세계 정수가 담겼다. 때로 개인과 세계의 접점에서 거세게 시대를 질타하고, 때로 “공허함과 광막한 삶의 끝, 의식 너머”(2019년 5월, 전라북도문학관 강연)에서 길어 올린 시편들로 삶의 모순을 다정하게 보듬어 안는가 하면, 끝끝내 사랑 희망 초탈의 영역으로 확장해가는 시인의 시적 여정이 온전히 그려진다.
1부에는 “끝없는 길”(「순례자」)에 선 시인이 포착한 생활의 단면들이 날카롭게 그려진다. “한 시대를 통곡하고 싶은 마음”(「통곡」)을 껴안고, “서러울 것도 없는 밥벌이의 추위”(「생활」)와 “저녁에 영혼을 잃고 실려가”는 삶(「겨울 저녁」)에도 “닳은 바지에 드러난/가장의 무릎”(「초승달」)으로 “살아남기 위한 몸짓”(「가을 가까이 내리는 비」)을 멈추지 않는 묵직한 현실이 이 땅의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의 풍경으로 되살아난다.
강상기 시인을 이야기할 때면 ‘오송회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2부에서는 “나의 별을 숨기는 먹구름”(「시인의 말」)의 시간을 헤쳐나온 시인의 마음속 풍경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모진 고문의 현장에서도 “심문하는 저놈도 가정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애써 이해하려다 “사는 방법이 저 짓밖에 없을까 슬퍼”한다. 피해자는 “파멸의 인생이 되어 이 사회에 내팽개쳐”지고 가해자에게 “역사는 언제나 저놈들을 비켜”가는 현실을 목놓아 외친다(「통닭구이」). 그리고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여전히 굳건하게 맞선다. “타서 죽을지언정/어둠 속을 헤매지는 않겠다”(「불나방」) 다짐하며 “다시 뭉근하게 뜨거워지길 기다”(「황혼 앞에서」)린다.
3부에서는 어두운 시기를 지나며 가닿은 초월의 세계가 끝닿은 데 없이 펼쳐진다. 지금껏 다른 시집에 실리지 않은 신작시들을 주로 가려 뽑았는데, 단풍 낙엽 모과 장미 백조 코끼리부터 시계 구름 물방울 하나까지 세계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존재 속에 깃든 깊은 묘의(妙意)를 깨우쳐 들려준다. “가시밭길을 걸었기에//마침내/아름다운 꽃”(「장미」)을 피웠다 말하는 시인은 “우연히 바라본 그곳/그곳이 바로 내 집”(「능선에 앉아」)이며, 스스로가 “다만 지상을 떠다니는 구름”(「풀밭에 누워」)임을 자각한다.
“대공분실 이후에도 서정시가 가능할까라는 강상기 시인의 절박한 시적 과업은 이제 개인의 사건이나 정서에 머물지 않고 시대와 타자의 아픔으로, 사랑의 가망성으로, 텅 비어 가득한 초탈에의 의지로 나아가고 있다,”(「해설」, 김현) 한 사람의 전 생애를 걸고 써내려간 76편의 시 한편 한편이 우리들 개개인의 삶의 순간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나와 가족, 나와 시대를 위해 앞만 보고 걸어온 시인이 낮게 읊조리는 “삶의 뒷모습”(「시인의 말」)이 현실에 깊게 뿌리박은 묵직한 위로로 와닿는다.
시인의 말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이후 50년이 흘렀다. 그동안 여섯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어떤 이유로 해서 펜을 잡지 못한 시간이 길었다. 지금껏 고초를 겪으며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니 눈앞에 안개가 서린다. 이번 50주년 기념으로 내 나이에 맞춰 76편의 시를 소환했다.
내가 갈구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불가능한 것을 염원하며 살았다. 텅 비어 있지만 자유와 침묵으로 꽉 차 있는 하늘을 염원했다. 세속과 초월 사이를 방황하면서 나의 별을 숨기는 먹구름에 괴로워했다. 그러나 맑은 하늘에 띄엄띄엄 떠가는 구름은 얼마나 한가롭고 여유 있어 보이는가? 내 삶의 뒷모습을 본다.
저자 소개
_강상기 (글)
강상기(姜庠基): 1946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1966년 월간종합지 『세대』 신인문학상과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1982년 오송회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고 17년간 교직을 떠나야 했다.
시집으로 『철새들도 집을 짓는다』 『민박촌』 『와와 쏴쏴』 『콩의 변증법』 『조국 연가』 『고래사냥』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빗속에는 햇빛이 숨어 있다』 『역사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공저) 『자신을 흔들어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