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노래하다
한국 동요의 선구자 정순철 평전(부제)
책 소개
“어린 자식 치지 말고 울리지 마옵소서” 외할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전 생애를 어린이 운동에 몸 바친 작곡가 정순철
도종환의 글로 깨어나는 어린이 운동의 새벽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100년 전 어린이 운동이 동트던 시기의 풍경을 ‘동요’라는 새로운 눈으로 그려낸 책 『어린이를 노래하다』가 미디어창비에서 출간되었다. 저자 도종환은 어린이날 하면 으레 떠오르는 소파 방정환을 뒤로 하고 한국 동요 4대 작곡가인 정순철을 전면으로 불러낸다. 전 국민의 애창곡인 「짝짜꿍」 「졸업식 노래」의 작곡가임에도 분단의 기억 속에 잊힌 정순철의 삶을 통해 3·1운동이라는 민족적 열망이 분출한 대사건을 전후로 이 땅에 독립의 열망을 키워내기 위해 분투한 어린이 운동의 주역들을 다채롭게 그려낸다. 또한 그 인물들이 관계 맺은 동학이라는 사상적 배경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저자 도종환이 정순철에 주목한 것은 그가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순철은 어린이 운동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던 동학의 2대 교조 해월 최시형의 외손자, 간토대지진 와중에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 해방 공간에서 활동하다 제자에 의해 납북된 교육자로서 그야말로 그 삶이 한국근현대사의 굴곡과 궤를 같이하는 인물이다.
“어린 자식 치지 말고 울리지 마옵소서”라는 해월의 가르침은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주시오”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자세 타일러주시오” 하는 선전물로 다시 태어나 100년 전 어린이날 거리에 뿌려졌다. 100년이 지난 지금, 부끄럽게도 아동 학대나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 등은 그칠 줄 모르고 연일 뉴스를 장식한다. 이 책은 우리의 100년을 되돌아보는 계기이자 앞으로의 100년을 위한 중요한 참고점이 될 것이다.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전 국민이 알고 부르는 동요를 지은 작곡가 정순철
「짝짜꿍」 「졸업식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 곡을 지은 작곡가 정순철의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다. 그의 노래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주 불렀지만, 작곡가의 이름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윤극영, 홍난파, 박태준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동요 작곡가로 불렸던 정순철은 1950년 6·25전쟁의 와중에 납북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역사는 그의 이름을 지웠다. ‘정순철’이라는 이름을 우리에게 되돌려준 이가 바로 시인 도종환이다. 저자는 오장환 시인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정순철의 이름을 처음 만났을 때의 떨림을 여전히 기억한다(「정순철의 생애를 복원하며」 8~11면 참조). 그가 유명한 동요의 작곡자라는 것, 그리고 해월 최시형의 외손자라는 사실이 이목을 사로잡았다. 정순철의 삶을 복원하기로 마음먹고 그의 삶을 뒤좇은 결과가 바로 이 책 『어린이를 노래하다』에 담겼다.
저자는 정순철의 흔적을 찾기 위해 도서관으로, 정순철의 고향 청산으로, 정순철이 공부했던 일본으로 동분서주했다. 정순철은 “동학혁명으로 인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고 경술국치와 3·1운동과 해방의 역사를 살다가 6·25전쟁으로 인해 생애를 마친”“출생과 종말이 기구하고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렇기에 그의 삶을 복원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의 삶은 이미 많이 지워져 있었다. 1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리나라의 자료도 많이 소실되었고, 일본의 자료는 간토대지진과 도쿄대공습으로 불타 없어졌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 정순철의 삶을 추적해갈수록 저자는 그가 그저 유명한 동요를 지은 ‘동요 작곡가’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1920년대와 1930년대 우리나라의 동요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자, 어린이 인권을 위해 노력한 어린이 운동가였고, 여성의 교육에 헌신한 교육자이기도 했다.
“어린 자식 치지 말고 울리지 마옵소서”
동학에서 시작된 어린이 운동
정순철의 삶을 시작하려면 동학에서부터 출발해야 했다. 정순철의 어머니인 최윤의 아버지, 즉 외할아버지가 동학의 제2대 교조인 해월 최시형이다. 그의 가계부터 이미 동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동학혁명 당시 최윤은 해월의 부인 등과 함께 옥에 갇혀 모진 고초를 겪었으며, 그때 청산군수가 최윤을 통인 정주현에게 데려가 살라고 주었다 한다. 정순철은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다. 늘 외롭고 쓸쓸했던 어린 시절을 거쳐 정순철은 십대 시기를 의암 손병희가 마련해준 집에서 해월의 나머지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아동문학가 소파 방정환이 의암의 사위가 되어 가회동 집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정순철은 방정환을 처음 만나게 된다. 둘은 무슨 일을 하든 늘 함께였다. 방정환의 아들 방운용 옹이 “방정환 있는 데 정순철 있고, 정순철 있는 데 방정환 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동학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어린이 운동 사상의 기원이 바로 해월의 가르침에 있기 때문이다. 해월은 그 유명한 「내수도문」에서 “어린 자식 치지 말고 울리지 마옵소서. 어린아이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아이 치는 것이 곧 한울님을 치는 것이오니”라고 했다. 종래의 가치관을 전복하고 어린이를 인격적 존재로 대해야 한다고 주창한 해월의 사상은 우리나라 어린이 운동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어린이 운동은 사람을 한울님처럼 섬겨야 한다면 어린이도 역시 한울님처럼 섬겨야 한다는 해월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운동이었다. 1923년 5월 1일 소년운동협회 이름으로 발표된 ‘소년운동의 첫 선언’은 세계적으로 보아도 매우 앞선 어린이 권리선언이다.
어린이 운동은 또한 3‧1운동 이후 대중을 상대로 한 독립운동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민족운동이자 구국운동이기도 했다. 일제 당국의 감시와 검열을 조금은 피할 수 있는 어린이 문학, 어린이 행사, 어린이 잡지, 동요와 동화 등을 통해 자주독립의 정신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이 나라의 미래는 어린이에게 있다”
어린이 운동가이자 교육자로서의 정순철
정순철은 192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어린이 운동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방정환과 함께 천도교소년회에서 활동했다. 일본 유학 당시 방정환에게 윤극영을 소개했고, 방정환, 윤극영을 비롯한 고한승, 진장섭, 정병기, 손진태, 조재호 등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어린이 운동 단체인 ‘색동회’를 창립했다. 잡지 『어린이』에 필자로 참여하며 동요를 작곡하여 발표하고 보급했다. 이후 어린이를 위한 동화 강연 등 여러 행사에서 동요에 관한 강의를 하고 어린이들에게 동요를 직접 불러주고 가르쳤다. 1930년대 초에는 경성보육학교에 재직하며 ‘녹양회’라는 동요동극단체를 만들어 아동극에 들어가는 수많은 노래를 만들었다. 해방 후에는 노래동무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동요를 만들고 보급했다.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정순철 선생의 활동은 겸손 그 자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죠. 그야말로 동학 스타일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라의 멸망과 근대적 변화라는 시대적 요구 사이에서 어린이에게 이 나라의 미래가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묵묵하게 해나갔다.
정순철이 쓴 글인 「동요를 권고합니다」를 보면, 동요를 만드는 작곡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는 “노래 중에도 동요처럼 곱고 깨끗하고 좋은 노래는 없다”며 동요가 우리의 심성을 정화시켜주고 정서를 순화해준다고 믿었다(「7장 우리나라 동요운동의 전성기」 160~162면 참조). 언젠가부터 어린이들이 동요보다는 대중가요를 많이 부르는 지금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그의 가르침이 주는 울림이 크다. 「노래 잘 부르는 법」에서는 음악에 대한 원론적인 생각과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윤복진의 시에 그가 곡을 붙인 동요 「옛이야기」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를 한 줄 한 줄 가르쳐준다(「9장 녹양회와 음악 교사 정순철」 229~237면 참조). 이 글은 정순철이 윤복진의 시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으며, 어떻게 그것을 노래로 잘 해석해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동덕여고, 무학여고, 성신여고 등에서 여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유치원 교사를 양성하는 학교인 경성보육학교, 중앙보육학교에서 음악을 교육하는 방법을 가르친 정순철의 교육자로서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글이다. 근대적인 방식의 음악 교육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음악사의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초기 어린이 운동사의 다채로운 풍경이 생생하게 펼쳐지다
우리가 ‘어린이’ ‘어린이날’을 말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소파 방정환이다. 저자는 방정환의 옆에서 함께했던 정순철을 드러내어 초기 어린이 운동사의 시야를 확대했다. 또한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1923년 전조선소년지도자대회, 1925년 어린이날 기념행사, 1928년에 치러진 세계아동예술전람회 등 여러 행사의 준비 과정과 일제 당국의 방해, 행사 선전 과정, 각계각층의 반응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당시의 어린이 운동사를 입체적이면서도 다채롭게 묘사한다. 이 책은 정순철 개인의 업적이나 남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조선 후기 동학혁명부터 경술국치, 3·1운동, 해방 그리고 1950년 6·25전쟁까지 정순철 인생의 굴곡은 그대로 우리의 역사의 굴곡과 겹쳤다. 그렇기에 정순철을 둘러싼 당시의 구체적인 시대상, 사회상, 주변 인물들과의 일화를 함께 엮어 정순철이라는 인간을 역사 속에 스며들게 했다. 그것이 바로 정순철의 성정을 닮은 이 책의 미덕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밝혀진 정순철 작곡의 악보 40여 곡을 부록으로 실어 사료적 가치도 담았다.
천도교소년회 창립 1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1922년 5월 1일 ‘어린이의 날’ 행사를 기점으로 삼는다면 2022년은 어린이날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일제강점기라는 악조건 아래에서 어떠한 외래 사상의 도입 없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낸 어린이 운동의 역사만큼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일이다(「6장 어린이날과 어린이 문화운동」 134~145면 참조). 이 책이 민족적 수난기임에도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어린이의 행복을 만들어내고 지켜내기 위해 분투했던 이들의 숨겨진 역사를 드러내는 계기이자, 어린이를 사랑한 정순철의 삶과 작품을 다시 한번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저자 소개
_도종환(都鍾煥) (글)
19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충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충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집으로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흔들리며 피는 꽃』 『부드러운 직선』 『해인으로 가는 길』『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사월 바다』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 『누군가를 사랑하면 마음이 선해진다』 등이 있다.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백석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제19~20대 국회의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제21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