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 김명시,
역사 속 숨겨진 여성 영웅의 삶을 소설로 복원하다
“아, 용맹한 여성 전사! 이름이 김명시라고 했지요?
대단한 여전사라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대체 어디 군사학교를 다녔기에 그리 용감무쌍한 겁니까?”
“조선 여성은 본래부터 다 용맹합니다.”
노동소설 『파업』으로 제2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한국 근현대사 속 그늘에 가려진 인물들을 조명하는 데 힘써온 안재성의 신작 장편소설 『명시』가 미디어창비에서 출간되었다. 『명시』는 ‘조선의 잔다르크’, ‘백마 탄 여장군’이라 불리며 항일 무장투쟁의 최전선에서 싸웠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생애를 소설로 재현해낸 작품으로, 조국 해방과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꿈꾼 한 여성의 치열한 삶을 생생하게 그린 역작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운명의 시간(命時) 속으로
김명시는 1907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김인석은 김명시가 열세 살 되던 해에 마산 3․1만세운동에 앞장섰다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오남매 중 삼남매와 어머니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한 운동가 집안이었다.
소설은 김명시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혁명의 성지 모스크바로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격동의 현장을 쫓는 작가의 선 굵은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특히 하얼빈 일본 영사관 습격, 조선의용대의 태항산 전투 장면 등의 사실적인 묘사는 영화를 보는 듯 긴장감이 넘친다. 고된 옥고를 치른 김명시가 마침내 해방을 맞아 호마를 타고 종로 거리를 행진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작품 내내 쌓아 올린 뭉클한 감정이 북받친다.
혁명이 가져올 희망, 사랑, 슬픔 중
가장 먼저 다가온 희망에 취했다
『명시』에는 주인공 김명시 외에도 조봉암, 여운형, 김단야, 박헌영 등 혁명의 희망을 품고 조국의 앞날에 일생을 바친 실존 인물들의 삶이 녹아 있다. 작가는 엄혹한 시대에 사회주의 운동가로서 독립운동과 민족해방 운동에 뛰어든 이들의 이야기를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다만 정직하게 기록한다. 그런 한편, 가상 인물 권오채와 이상훈은 서사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이 작품을 소설로서 한결 풍성하게 한다.
3․1운동 100주년,
역사의 비극 속에 잊혀진 여성 영웅의 이름을 되살리다
김명시는 해방 후 남쪽으로 내려와 재건된 조선공산당과 남조선로동당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여성으로서는 최고 서열이었으나, 조선공산당이 불법화되면서 지하활동을 펼치다 만 3년 만인 1949년에 체포된다. 그해 가을, 김명시가 경찰서 유치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지만, 독립운동과 민족해방 투쟁에 운명을 걸고 온갖 고초를 이겨낸 불굴의 여성 운동가가 제 손으로 생을 마감했으리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독립운동에 기꺼이 삶을 바친 이가 해방된 조국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은 역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반공 이념에 매몰된 우리 역사의 불행한 단면이기도 하다.
2019년 ‘열린사회희망연대’는 김명시 장군을 독립 유공자로 포상할 것을 신청했으나 아직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열아홉 살 때부터 오늘까지 21년간의 나의 투쟁이란 나 혼자로선 눈물겨운 적도 있습니다마는 결국 돌아보면 아무 얻은 것 하나 없이 빈약하기 짝이 없는 기억뿐”(1945년 11월 21일 「독립신보」)이라던 그의 말이 새삼 애달프다.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장군’ 호칭까지 받았으나, 의문의 죽음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명시, 그가 살았던 시대는 어둠의 시간이었지만 그렇기에 그의 삶은 더욱 빛난다. 그 빛을 현재에 되살리고자 한 작가의 염원이 독자들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저자 소개
_안재성 (글)
1960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1992년 탄광노동운동으로 두 차례 감옥살이를 했으며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글을 써왔다. 장편소설로 『경성 트로이카』 『연안행』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등이 있으며, 『이관술 1902-1950』 『이현상 평전』 『박헌영 평전』을 비롯해 이일재, 윤한봉, 이수갑 등 다수의 평전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