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치히로 그림책 정신을 되살린 작품 국내 첫 출간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거장의 숨결
2018년 12월 작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재출간된 『눈 오는 날의 생일』을 시작으로, 2년 여에 걸쳐 순차적으로 선보인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책’ 시리즈가 『건강해진 날』(미디어창비)을 마지막으로 총 7권 완간되었다. 이와사키 치히로는 수채화와 수묵화를 결합한 서정적인 화풍으로 반세기 동안 널리 사랑받아 왔다. 『건강해진 날』은 이와사키 치히로가 생전에 남긴 그림을 그의 아들이자 그림책 평론가인 마쓰모토 다케시가 완성한 작품으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세대를 거듭해 읽히며 여전한 생명력을 지닌 치히로 그림책 시리즈의 마지막 권으로 선보이기에 걸맞다.
몸이 아픈 어린이의 마음까지 위로해 주는 이야기
『건강해진 날』은 같은 시리즈에 속한 전작 『비 오는 날 집 보기』처럼 집 안에 홀로 머물러야 하는 어린이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비 오는 날 집 보기』가 엄마의 부재라는 상황을 비 오는 날 특유의 정취로 표현했다면, 『건강해진 날』은 며칠째 이어진 열 기운으로 조금은 피곤하고 나른한 감정을 그린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종이접기도, 그림 그리기도 “아주 잘하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혼자서는 기쁘지가 않다. 아이는 나비가 되어 맘껏 멀리 날아가는 상상을 하며 외출하고 싶은 마음을 달랜다. 병이 낫기만 한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상상이 아픈 아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기대다. 외출을 간절히 기다리던 아이의 방문에 드디어 찾아온 노란 나비의 노크. 아이는 과연 나비를 따라 친구를 만나러 나갈 수 있을까?
머잖아 다시 친구들과 뛰어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주는 그림책
이 작품은 ‘코로나 19’ 확산 이후로 야외 활동에 어려움이 생기고, 실내 생활에 익숙해져야 하는 지금의 어린이들에게 새롭게 읽힐 지점이 있다. 질병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전에 없이 커진 코로나 시대에, 병이 곧 나아서 친구들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남다르게 와닿는다. 병이 깨끗이 나은 치이를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함께 놀자는 친구들의 목소리다. 세계와 고립되어 방에서 혼자 지내던 치이의 “엄마, 오늘은 밖에 나가도 돼?”라는 물음은 어른 독자들에게도 이전과 다른 느낌으로 실감된다. 우리는 누구나 언제라도 아플 수 있지만, 병은 치유되고, 일상은 회복될 수 있다. 건강을 되찾음으로써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구조는 비단 몸의 건강뿐 아니라 병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으로 지친 마음의 건강까지 빌어 주는 듯하다. 이제까지 당연하게 여겨 왔던 일상의 소중함을 누군가에게 다시 한번 약속받고 싶은 시대에 긴한 위로가 되어 주는 작품이다.
치히로의 그림책 정신을 사랑으로 되살리다
한편 『건강해진 날』은 이와사키 치히로가 생전에 남긴 그림을 사후에 그림책 편집자 다케이치 야소오의 기획으로 치히로의 아들 마쓰모토 다케시가 펴낸 것이어서 더욱 뜻깊다. 마쓰모토 다케시는 그 역시 그림책 작가이자 평론가로 작품 활동을 펼쳐 왔다. 1977년에는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책 미술관(현 도쿄 치히로 미술관)을 세우고, 1997년에는 아즈미노 치히로 미술관을 여는 등, 어머니 치히로의 그림책 정신을 잇기 위해 애써 오기도 했다. 어머니의 작품 세계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귀하게 간직해 온 아들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무렵의 나이가 되어 펴낸 이 책은 이와사키 치히로의 작품을 사랑해 온 애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긴다. 일곱 권의 치히로 그림책 시리즈 중 유일하게 한국에 첫선을 보이는 작품이어서 한국 독자들에게는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건강해진 날』의 테마는 그림책 편집자 다케이치 야소오 씨와 제 어머니 이와사키 치히로가 30여 년 전에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1974년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대로 출간되지 못했지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지 3년째에 다케이치 씨가 남아 있는 그림으로 책을 만들지 않겠느냐고 해서 함께 펴낸 것이 1977년판 『건강해진 날』이었습니다. 그 그림책은 더는 제작되지 못한 채 30년 남짓 세월이 흘렀습니다. 2006년, 다케이치 씨로부터 다시 한번 『건강해진 날』을 출간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마침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나이인 55세가 되었습니다. 그림책을 되풀이해서 읽자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습니다. 나는 다케이치 씨에게 부탁해 몇 장의 그림을 바꾸어 구성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물론 어머니의 그림만큼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온 힘을 다한 작업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이상한 일 하지 말아 줘."라고 말씀하실 것 같다는 느낌도 들지만 의외로, 웃으며 허락해 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치히로의 그림책이 지금도 계속해서 읽히고 있는 것은 그림책에 담긴 애정이나 작은 기쁨이 우리 생활 가운데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이 그림책을 통해 이와사키 치히로의 세계를 즐겨 주신다면 다행입니다. (2006년)
_마쓰모토 다케시
저자 소개
_이와사키 치히로(いわさきちひろ) (글)
1918년 12월 15일 일본 후쿠이현에서 태어났습니다. 10대에 배운 스케치 및 유화 기법과 20대에 배운 서예 기법을 접목해 30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수채화와 수묵화를 결합한 독특한 화풍으로 일본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화가이자 그림책 작가입니다. 평생 어린이를 작품 테마로 삼았고, 생전에 반전 및 반핵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일본에서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 소학관 아동문학상, 문부대신상을 받았고, 해외에서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그래픽 상, 라이프치히 국제도서전 일러스트 상을 받았습니다.
저자 소개
_엄혜숙 (옮김)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했고, 지금은 그림책 작가 및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맛있는 케이크』 『비밀이야, 비밀!』 『통통아, 빨리 와!』 『세탁소 아저씨의 꿈』 『야호, 우리가 해냈어!』 등을 썼고, 『큰고니의 하늘』 『섬수리부엉이의 호수』 『문을 통통』 『비에도 지지 않고』 『숲속 피아노』 『내 고양이는 말이야』 등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