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작가

[더책] 비 오는 날 집 보기

그림
이와사키 치히로(いわさきちひろ) 화가 소개
옮김
엄혜숙 역자 소개
출간일
2020-04-20
ISBN
9791189280956
페이지
32
가격
13,000원
-

책 소개

“일본 그림책의 보물”
이와사키 치히로가 선사하는 또 하나의 걸작


일본 그림책을 대표하는 이름,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책 시리즈의 두 번째 권 『비 오는 날 집 보기』(미디어창비)가 출간되었다. 『창가의 토토』 삽화로도 널리 알려진 이와사키 치히로는 수묵화와 하이쿠 작법을 통해 일본 그림책의 지평을 넓힌 화가이자, 세계에서 사랑받는 그림책 작가다. 이 책은 그의 그림책 중에서도 수채 기법이 유달리 빼어나게 표현되어 비 오는 날의 고유한 정서를 풍부하고 생동감 있게 전한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애틋한 마음을 섬세하게 어루만져 보편적인 호소력을 띠면서도 혼자 집에 남겨진 어린이의 외로운 감정을 진지하게 탐구한 역작이다.


거장의 붓끝에서 새롭게 드러나는 어린이의 숨겨진 면모

『비 오는 날 집 보기』는 밝고 경쾌한 여느 그림책과는 달리 아이의 나직한 독백으로 시작한다. 문득 방에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주위는 유난히 적막하게 느껴진다. 혼자 집을 보는 경험이 익숙지 않은 어린이에게는 이 상황이 단지 빈집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에 홀로 던져진 듯 막막하게 다가온다. 아이는 엄마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고 싶은 마음을 녹색 풍선에 담아 띄운다. 금방 온다고 약속한 엄마는 아직 소식이 없다. 아이는 아기 고양이에게 손을 내밀고,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나름으로 외로움을 달래 보려 애쓴다. 하필 비까지 내려 처음 느끼는 이 낯선 감정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불안함을 지우려 무심코 손가락을 입에 물지만, 이내 손가락을 빨면 안 된다는 엄마 말이 떠오른다. 엄마가 없어도, 어쩌면 엄마가 없으니 혼자서도 의젓하게 참아 본다. 그때 울리는 갑작스러운 전화벨 소리. 아이는 놀라 달아나는 아기 고양이처럼 커튼 뒤로 숨고 싶지만, 숨어도 소용없다는 건 스스로 이미 알고 있다.


외로워하며 한 뼘 성장하는 어린이

따르릉따르릉 소리에도 움츠러들던 아이는 그러나 이윽고 그 전화가 자신을 찾는 엄마의 연락일지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아이는 물기 어린 창문에 소원을 적는다. 자신이 바라는 일을 풍선에게 대신 부탁하던 첫 장면과는 달리, 어느새 이루고 싶은 소원을 제 손으로 분명히 써 보일 줄 아는 모습으로 한 뼘 자라 있다. 아이가 남몰래 적은 소원은 과연 무엇일까? 작가는 짐짓 비밀로 남겨 두지만, 책을 유심히 읽은 독자라면 작가가 숨겨 둔 작은 선물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보편적인 감정의 내밀함을 발견하는 작가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간절한 마음은 국경과 세대를 넘어 공감하는 보편적인 정서다. 일찍이 우리 아동문학에도 전차 정류장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을 그린 소설가 이태준의 「엄마 마중」이라는 빛나는 유산이 있다. 그보다 젊은 독자라면 “찬밥처럼 방에 담겨” “천천히 숙제를” 하며 “열무 삼십 단을 이고/시장에 간 우리 엄마”를 기다리던 기형도의 「엄마 걱정」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진 경험이 있으리라.
이와사키 치히로는 『비 오는 날 집 보기』에서 자기만의 화법으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감정을 포착한다. 방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한나절을 그렸을 뿐이지만, 엄마를 통해서만 자기 존재를 보호받고, 증명할 수 있었던 어린이가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간직하는 잊지 못할 순간을 인상적으로 담아냈다. 어디선가 걸려 온 전화벨 소리를 계기로 아이의 태도가 전환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세계에는 이제 자신 앞으로 걸려 오는 전화, 다른 누구를 통하지 않고 곧장 나에게 말을 걸어 주는 이가 있으며, 나 역시 더 이상 숨지 않고 그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누군가의 보호에 기대야만 했던 어린이가 혼자서도 집 보기를 할 수 있다며, 전화벨이 다시 한번 울리기를 바라는 존재로 거듭난 것이다.


어린이를 믿을 때 가능한 진실한 감동

맑은 날이 있으면 때로는 비 오는 날도 있듯이, 어린이라고 해서 언제나 명랑할 수만은 없다. 비 오는 날처럼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운 감정은 모른 척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이 작품의 또 한 가지 남다른 면은, 엄마가 돌아와 불안한 감정을 달래 주며 끝맺지 않는다는 데 있다. 책의 마지막 장면은 여전히 홀로 있는 아이의 뒷모습이다. 어린이의 외로움을 섣불리 위로하지 않고, 그 외로움을 마주해 보라고 격려하는 작가의 선택은 작품을 걸작의 반열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어린이를 향한 작가의 굳건한 믿음에서 비롯한 것이기에 진실한 감동을 준다.


“그림책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하자”

이와사키 치히로는 일본 그림책을 대표하는 걸출한 작가이면서도 자신이 일군 작품의 성취를 겸손히 편집자에게 돌린다. 그의 작품 세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그림책 편집자 다케이치 야소오다. 1950년 출판사 시코샤를 세우고, 1955년 월간 『어린이세계』를 창간한 다케우치는 1968년, 영상 매체로 옮겨 가는 시대적 흐름에 “그림책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하자.”라며 이와사키 치히로를 찾아가 실험적인 그림책을 만들자는 뜻을 모은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어린이의 감수성을 테마로 한 그림책 시리즈는 당시 주류였던 이야기 그림책과는 결이 다른, 전혀 새로운 그림책의 가능성을 열었다. 구체적인 표현 방식에 있어 굳이 그리지 않음으로써 독자를 더 넒은 상상의 세계로 초대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그림뿐 아니라 문장에서도 하이쿠 작법에 영향을 받아 시적인 언어로 풍부한 감상을 불러일으키고자 애썼다. 총 7권으로 기획된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책 시리즈는 2018년 12월 작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펴낸 『눈 오는 날의 생일』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선보여 2020년 여름 완간을 앞두고 있다.

이 작업을 할 때, 기획자인 다케우치 야소오 씨와 늘 야구에 빗대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내가 마음의 동요가 심한 투수라고 한다면, 다케우치 씨는 저를 잘 이끄는 유능한 포수였습니다.
“훌륭한 타자가 있으니까 걱정 없어요.” 타점을 낸 그 훌륭한 타자는, ‘신일본제판’이었습니다. 투수와 포수가 아무리 제멋대로 모험을 해도 아름답게 인쇄해 주었습니다. 그림책 작업도 야구와 마찬가지로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것을 마음에 사무치도록 느꼈습니다. 문장 역시 함께 생각해 주었습니다. 편집자 여러분의 세심한 도움은 정말로 고맙게 느낍니다. 모두가 정성을 기울여 책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_이와사키 치히로

-

저자 소개

_이와사키 치히로(いわさきちひろ) (그림)
1918년 12월 15일 일본 후쿠이현에서 태어났습니다. 10대에 배운 스케치 및 유화 기법과 20대에 배운 서예 기법을 접목해 30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수채화와 수묵화를 결합한 독특한 화풍으로 일본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화가이자 그림책 작가입니다. 평생 어린이를 작품 테마로 삼았고, 생전에 반전 및 반핵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일본에서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 소학관 아동문학상, 문부대신상을 받았고, 해외에서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그래픽 상, 라이프치히 국제도서전 일러스트 상을 받았습니다.

-

저자 소개

_엄혜숙 (옮김)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했고, 지금은 그림책 작가 및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맛있는 케이크』 『비밀이야, 비밀!』 『통통아, 빨리 와!』 『세탁소 아저씨의 꿈』 『야호, 우리가 해냈어!』 등을 썼고, 『큰고니의 하늘』 『섬수리부엉이의 호수』 『문을 통통』 『비에도 지지 않고』 『숲속 피아노』 『내 고양이는 말이야』 등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