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아버지를 처음 본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눈물이 왼뺨과 오른뺨의 길이를 재듯,
우리는 서로를 생각한다
최초의 시(詩) 큐레이션 앱 ‘시요일’ 론칭 1주년을 맞아 시 산문집 『당신은 우는 것 같다: 그날의 아버지에게』(미디어창비)가 출간되었다. 『당신은 우는 것 같다』에는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그와 불화해본 모든 이에게 건네는 위로의 시와 산문이 실려 있다. 시와 산문이 고루 사랑받는 신용목과 한국 시의 새로운 얼굴 안희연, 두 시인이 ‘아버지’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당신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아버지를 마냥 존경해야 하거나 연민하는 대상으로 그리지 않고, 시를 통해 그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나’를 성찰하는 시인만의 통찰력이 빛나는 산문집이다. 아버지의 존재가 버거웠던, 때로는 아버지의 부재가 애틋했던 우리를 대신해 시인이 그린 아버지의 초상(肖像)을 만날 수 있다.
시요일의 안목으로 엄선한 ‘아버지’에 대한 시
독자들의 일상을 시로 물들인 큐레이션 앱 ‘시요일’이 론칭 1주년과 이용자 20만 돌파를 기념해 시 산문집을 선보인다. 지난 1년간 다양한 큐레이션(오늘의 시/테마별 추천시/시요일의 선택)을 통해 시로 안부를 건넨 시요일은 20만이 넘는 이용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신경림 박준 등 널리 알려진 시인뿐 아니라 강다니엘의 추천으로도 화제를 모은 시요일은 다양한 세대를 넘나들며 기존의 문학 독자를 넘어서 한동안 시와 멀어졌거나, 그동안 시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독자들까지 끌어안았다. 이에 기대 이상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그간 이용자들이 즐겨 찾은 키워드인 ‘가족’을 테마로 시 산문집 『당신은 우는 것 같다』을 펴낸다. 이 큐레이션 북은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닌 테마를 다루면서도 그간 여러 산문집에서 호명되어온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를 조명하는 점이 색다르다.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나의 한계를 심어준 사람. 이 가능과 불가능을 집약할 수 있는 대명사는 아버지밖에 없다. 그것이 ‘신’도 ‘세상’도 그의 이름을 빌려 쓰는 이유일 것이다. 더없이 고마우면서도 무한히 원망스러운, 그 애증의 골마다 보름달이 뜨고 박꽃이 핀다. 삶과 죽음이 싸우듯, 사랑과 미움이 서로를 찌르고 희망과 절망이 자리를 바꾸듯, 그리고 눈물이 왼뺨과 오른뺨의 길이를 재듯, 우리는 계절의 한 찰나에 핀 꽃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서로를 생각한다.
_신용목 「오래 잊었던 그 밤이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14-15면)
우리가 태어나 최초로 불화한 사람,
‘아버지’라는 한 세계를 시로 들여다본다
나를 상처 입힌,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사람을 향해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가파른 사랑인지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알고 있기도 하다. 창과 방패처럼, 팽팽하게 맞서는 미움이 있어 또 다른 사랑은 태어나고 사랑은 또 사랑을 낳는다는 것을.
_안희연 「눈에 붙은 이 불이 다 타는 순간까지가 사랑이라고」(144면)
부모는 우리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마주치는 타인이다. 어머니가 대체로 포근하고 그리운 유년의 추억으로 그려지는 데 비해 유독 아버지는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존재로 기억되곤 한다. 『당신은 우는 것 같다』에는 백석 정호승 김사인 함민복 진은영 박준 신철규 등 37인이 쓴 아버지에 대한 시(40편)와 신용목 안희연 시인이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돌아본 산문이 어우러져 있다. 분식집 김밥을 앞에 두고 이모로부터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들어야 했던 시인의 어린 날은 우리에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안희연 「아홉살, 인생이 그런 것인 줄 그때는 몰랐네」, 127-129면). “쓰다 만 초 같은” 손이어도 좋으니 아버지가 살아 돌아와 신부 입장을 함께해주길 염원하는 시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은 읽는 이까지 간절한 마음을 품게 한다(안희연 「쓰다 만 초 같은」, 152-154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편지에 “다음 생에도 부자지간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내가 아버지로 태어나고 싶습니다.”라고 쓴 시인의 고백은 누구나 공감하기에 굳이 그 까닭을 밝힐 필요가 없다(신용목 「오래 잊었던 그 밤이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 14-16면).
문학이 낯선 독자들에게 건네는 시의 초대
살아 있을 때 피를 빼지 않은 민어의 살은 붉다 살아생전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 아버지가 혼자 살던 파주 집, 어느 겨울날 연락도 없이 그 집을 찾아가면 얼굴이 붉은 아버지가 목울대를 씰룩여가며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_박준 시 「파주」 전문(166면)
신용목과 안희연 두 시인은 세대, 성별이 다른 만큼 아버지와 함께한 추억과 경험도 다르다. 그럼에도 시 안에서 아버지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거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안쓰럽게 떠올려볼 때, 아버지를 향한 그들의 감정은 서로 밀접하게 교차한다. 아버지에 대해 필자들이 느끼는 이 애틋하고도 미묘한 감정은 독자 역시 결코 다르지 않기에 그 여운은 더 오래 남는다. 문학을 통해서만 가능한 이 특별한 체험에서 우리는 과연 시의 힘을 느낀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단절되고 가족마저 파편화되기 쉬운 시대에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시의 존재가 여전히 소중하다.
몇해 전 안산에서 만난 한 아버지는 늘 아이 사진을 가슴에 품고 다닌다 했다. 외투 안주머니에 담긴 아이 사진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흐릿했지만, 아버지 눈엔 아주 선명히 보인다 했다. 신원 확인을 위해 바다에서 막 건져올렸을 때의 모습을 찍어둔 것이었다. 그곳엔 그런 사진이 아주 많았다 했다. 번호 붙여진 죽음이 너무 많아서 하루가 백년처럼 흘렀다 했다. 나는 아버지를 여읜 아이가 늙는 시간과 자식을 앞세운 아버지가 늙는 시간, 둘 중 누구의 시간이 더욱 느리게 흐를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섣불리 답을 내릴 순 없었지만, 아버지가 늙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단 하루면 충분했으리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_안희연 「얘야, 이것이 그냥 늙어 쓰러진 기차겠니」(149-150면)
저자 소개
_신용목 (글)
1974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와 산문집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를 냈다.